한국에서 국어는 한국어이고, 일본에서 국어는 일본어이다.
한국에서 일본어는 외국어이고, 일본에서 한국어는 외국어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갑작스러운 귀국(?)이었기에, 나는 일단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워야만 했고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상태로 학교 생활을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ㅏ, ㅑ, ㅓ, ㅕ, ㅗ, ㅛ, ㅜ.....
세종대황은 천제였고 한글은 우수하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이 문자들을 처음 접하게 되면 정말 이상하고 특이하다는 인상이 대다수 일 것이다. 한자는 익숙했지만 한글...그것은 룬 문자나 아라비아 문자와 별반 다를게 없이 낯설고 이상한 문자들이었고,
ㄼ, ㄺ, ㄲ, ㄸ, 뷁....
이런 콤비네이션들은 정말 말도 안되게 이상하고 이해도 되지 않는 수식이었다.
어렵게 가나다를 외우고 겨우 읽는 법을 배웠더니...
'닭이 알을 많이 낳았습니다.'
달..ㄱ???이 알 을...만...ㅎ???이 나..ㅎ???앗ㅆ????스ㅂ니다......
어떻게 읽어라는 것인지...로직은 알겠는데, 그 로직을 1단계만 알았기 때문에 읽는게 너무 어려웠다. 특히 ‘ㅎ’ 받침에서는 아주 신음 하듯이 읽었다.
만흐으으으이(많이), 나흐으으으으으앗쓰스브니다...(낳았습니다.)
누가 한국어가 쉽다 했더냐!
일본어는 히라가나 카타카나 하나하나가 발음이 딱 정해져 있어서 그것만 외우면 나머진 단어를 암기하면 되지만
한국어는 자음과 모음의 글자가 대표하는 발음을 우선 이해해야 하고
그 뒤에 자음과 모음의 조합의 룰을 알아야 하고
그 조합의 콤비네이션에서 오는 변칙을 이해해야 하고
그것을 다 이해하고 나서야 단어 암기의 단계에 들어 갈 수가 있다....
발음의 이해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다.
어와 오는 그냥 일본에서는 お다.
우와 으는 그냥 일본에서는 う다.
에와 애는 그냥 일본에서는 え다.
무슨 차이냐. 한국인은 이 발음들을 들으면 차이를 인식한다더냐. 히어링 능력이 초능력 수준이냐.
한글의 기초를 떼고 나면 문법은 쉽냐. 아니지.
노랗다. 누렇다. 황색, 누리끼리한...yellow...
‘푸른’은 녹색이 되기도 하고 파란색이 되기도 한다.
명사는 스럽다는 말을 붙이면 형용사가 된다.
노고스럽다 자랑스럽다 조심스럽다 걱정스럽다......영어의 -ly같은 느낌일거 같은데
-스럽다는 그 활용범위가 넓어도 너무 넓다. 아무데나 같다 붙이면 다 형용사가 된다.
그래서 한국 문학은 그 스토리의 흐름과 뉘앙스를 파악하려면 상당한 고통과 인내가 따라야 했다.
여하튼, 그렇게 한국 적응을 어려워하는 나에게 담임 선생님이었던 국어 선생님이 방과후에 교실에 남아라는 얘기를 했다.
'방과후 남아라'는 말을 알아 먹은건 아니지만, 손짓 발짓하면서 나에게 신호를 보내니 난 알아먹을 수 있었던것 같았다.
그 선생님의 의도는 '방과후 남아서 내가 너에게 한국어를 특별 교육 시켜주겠다.'는 아주 훌륭한 직업 정신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과후 특별 한국어 수업 첫날...선생님과 나는 마주 앉았고, 선생님이 한국어로 뭐라뭐라 하시더니 난 못알아 듣고 있었고
어느 순간 선생님이 나를 보고 씌익 웃으시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면서
"개새끼"
라고 하셨다.
영문도 모른채 갸우뚱 하던 나에게 선생님은 이번엔 조금 더 강하게 나를 툭 치더니
"개새끼"
라고 하셨다.
발음이 아주 간단하고 명료해서 쉽게 기억하고 외울수 있었던 언어
"개새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있던 나에게 이번에는 선생님은 내 손을 잡더니 당신의 몸을 내가 툭 치게 하면서
"개새끼"
라고 하신다.
그렇데 두 세번 나의 "개새끼"의 주입 교육이 지나고 나는 이내 그 뜻이 "아프다"로 이해를 했다.
아...이 선생님은 혹시 내가 나쁜일을 당하면 안되니까..."아프다"는 말을 알려 주시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모든 언어는 욕부터 배워야 한다고 하고 싶었던거 같다)
다음날, 영어 수업시간. 시작과 동시에 영어 선생님의 숙제 검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반쪽 당구 큐대를 들고 다니면서 책상위 공책을 휫휫 넘겨가면서 숙제 검사를 하더니
숙제를 해오지 못한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욕설과 함께 뺨을 맞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내 차례가 오더니, 평소대로라면
"이 친구는 일본에서 와서 한국어를 모른다"
는 어필을 선생님에게 같은반 친구들이 해줘야 하는데, 그날은 공포의 분위기가 교실을 압도 하더니 그 누구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닥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차례가 되어 깨끗하게 백지 상태인 내 노트를 보더니 영어 선생님은 나에게 고함을 치기 시작한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겁을 먹고, 떨면서 선생님 표정을 보던 그 순간
내 눈앞이 번쩍 강한 전기가 흐르듯 강렬한 통증이 나의 뺨을 통해 폭발했고...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은 경험이 없었던 나는 엄청난 공포와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영어 선생님에게 싹싹 빌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센세이.....개새끼 데스......개새끼....개새끼이잉 ㅠㅠㅠㅠ엉엉...."
.
.
.
그 뒤에 벌어진 일은...19금이라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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