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기록

현대판 황민화 정책

JANGSANG 2020. 10. 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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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제대로 배우기 전, 두살 때 나는 일본에 건너 갔었다고 한다.

내가 두살 때였다면 두살 어린 나의 여동생은 일본에서 태어났거나 태어나자 마자 일본에 갔던 것이 된다.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두살 이전 희미한 장면들은, 그 곳이 일본이었는지 한국이었는지 나에게는 알길이 없으니, 부모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것이 나의 태초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을 두고 역사라 하는 것인가.
문서 등의 기록물에 의한 증명인가,
제3자 목격자의 증언인가,
경험 당사자의 기억인가...
아니면, 절대 권력을 가진 자의 반역 할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인가.

여하튼 경험 당사자의 기억으로써 주장할 수 있는 나의 역사는 두살 부터의 일본에서의 생활에서 시작한다.

내가 일본에서의 유년, 청소년 시절을 보내게 된 이유는 부모님 사정이기 때문에, 내가 일본에서 살게 된 연유를 내가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것이 나의 본의었던 아니었던 간에 일본에서의 나의 역사는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을 형성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많은 '처음'의 경험들로 가득한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사람답게 어떤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일본어였고.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고 그것이 일본인이었고,
처음으로 싸운 친구도 일본인이었고,
처음으로 빠진 짝사랑도 일본인이었고,
처음으로 마음이 이어지다 이별의 아픔을 겪은 사랑 또한 일본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15살까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일본인 이라는 국민들 속에서 일본인 처럼 녹아 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일본인이 아님을 깨닫고,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너무나도 낯설었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제로 부여받아
그 순간 나는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이방인이 되어 일본에 머물어야 하는 시기가 왔고,

이내, 그 한국에 한국인으로써 '귀국'을 하게 되어 또 다른 나의 '처음'의 역사가 시작했을 때,
전학 오게 된 한국의 학교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한국인 동급생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들었던 선명한 나의 호칭은...

'쪽빠리' 였다.

훗날, 한국 학교에서 배운 역사지만,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황민화정책으로 의해 창시개명을 강요받고 일본어 사용을 강제 교육 받았다고 한다.

그 역사가 나의 역사와 흡사하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일본인속에 일본인으로써 아주 잘 녹아 살아왔고,
인생의 많은 '처음'의 부분을 일본에서 역사를 만들어 갔던 중학교 3학년 무렵의 소년에겐

갑작스럽게 한국인화를 강요하고, 강제로 그 이름을 개명 당하고 어렵기만 한 한국어를 배우게 하여 나의 정체성을 한국으로 바꿔라는일이...지난 역사를 잔인하게 부정하고 새 역사를 강압적으로 주입 시키는 고문의 시간이기도 했었다...

나는, 일본에서 나고 일본에서 자라고 일본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에게는 반항할 힘도 부정할 권리도 없이...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한국인이 되어야만 했다.

훗날에...부모님께 들었던 이유는...
원래는 가족모두가 일본인으로 귀화할 계획이었으나,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해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일본으로 다시 돌아갈 형편도 되지 못하여 일본인으로의 귀화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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