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의 기록/중국출장

출국 D+3 days 상해 시설격리 이후 장가항 시설격리

JANGSANG 2021. 3. 1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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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착 후 만 3일 동안의 상해에서의 시설격리는 인간의 거주 공간에 있어서 '창(窓)'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해 주는 기간이었다.

처음, 상해 격리시설에서 내 방을 배정 받고 들어갈 때에는 '최악은 아니구나...'하고 내심 안도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결코 수용 가능한 '노멀'한 환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창이 없이 지낸 첫날, 나는 밖깥이 날이 밝았는지, 어두워졌는지, 날씨는 어떤지 바람은 부는지 사방이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방에서는 알 방도가 없어서 천장에 뚫린 먼지쌓인 배기구를 그냥 멍하지 올려다 봐야만 했었다. 

이틀째 되던 날 아침은 알람소리에 깨어 일어난 뒤, 열어볼 창문이 없다는 것을 재인식한 뒤 다시 이상한 불안감으로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니, 구치소에도 창은 있지 않는가. 흐르는 구름이라도 볼 수 있고 낮인지 밤인지는 알수 있지 않는가. 

제 시간에 맞춰서 문앞에 두고가는 격리자용 도시락과, 오후 3시마다 체온 측정을 하러 오는 보건당국자를 위해 문을 열어도 밖에 못나가도록 입구에서 이마만 까서 내밀어야 했던 생활은....구치소 독방 수감자와 다를게 무엇이던가...

문득, 3일 후 바깥에 나오면 윌스미스의 영화 'I AM LEGEND'처럼 지구가 종말을 맞아서 인류가 멸망하여 나밖에 없을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

I AM LEGEND (2007)
정해진 시간마다 보급되는 식사. 조식(왼쪽)과 석식(오른쪽)

딱 3일이 한계였던것 같다. 거기서 하루 더 연장 해라면 진짜 나는 미쳤을지도 모른다. 상해에서의 3일 격리가 끝나는 날 아침, 나는 이미 어제 밤에 짐을 다 싸놓고 있었고. 조식은 찐빵 두개 정도만 먹고 치워버리고. 아침 8시경에 위챗으로 내려오라고 공지 메세지 뜨면 내려오라는 지침을 받아서 진짜 문앞에서 위챗 메세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7시 50분경이었던것 같다. 위챗으로 내려오라는 알림이 와서 나는 바로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잡고 바깥으로 뛰어 나왔다.

아...바깥 공기....미세먼지 가득한 중국일지라도...이 봄기운 가득한 바깥공기...

사람이 사는 곳에는 꼭 창이 있어야 한다. 전세계가 그 어떤 곳에도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면 건축법상 창을 반드시 만들도록 법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방에 들어올때 말고 쓸일이 없었던 룸키를 반납하고 여권 확인을 하더니 '상해에서 자가격리 3일 했어요'라는 증명서? 같은 것을 나눠준다. 이 서류는 나중에 장가항 넘어갈때까지 보여달라는 곳도 없었고 왜 줬는지 모르겠지만...기념품인가? 암튼 잘 챙겨 놓고 있었다.

상해 코로나예방 및 통제를 위한 핵심 인력의 검역 건강 관찰을 위한....

전날에 최종행선지 등록하고 버스 예약하라고 위챗으로 공지를 주는데 중국내 폰번호가 필요하다. 로밍해서 간 사람이거나 중국내 폰이 없는 사람은 주변 사람 잘 찾아보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나는 중국 현지 주재원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QR코드를 발급 받아 이미지 파일로 보관 했다.

버스 예약 QR코드

일단, 최종목적지의 격리시설로 가기전에 쿤샨에서 다 같이 모여서 최종 목적지 별로 나눠서 다시 버스를 갈아 탄다고 한다. 일단, 쿤샨행 첫 버스를 타고 쿤샨으로 향했다. 버스 타기전 KF95마스큰지 뭔지 모르겠고, 그건 벗고 이거 써라면서 두꺼운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끼라고 준다. 소독용 물티슈도 두장 준다. 행선지가 적힌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라 한다...경각심이 매우 큰건 좋지만...병균 취급 당하는 거 같아서 썩 기분은 좋지 않다....

가슴팍 스티커와 밀폐마스크

그래도 일단, 여기를 벗어날 수 있으니 그것만 해도 나는 만족했다.

쿤샨 가는 버스안과 봄을 맞은 상해 풍경 그리고 라텍스 장갑

버스타고 20분 정도 간것 같다. 컨벤션 센터 같은 곳으로 들어간다. 아니, 컨벤션 센터였다. 버스터미널인가? 했는데 컨벤션 센터였다...

컨벤션 센터에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환영합니다 대형 간판과...그것과 대조적인 출입구 모습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이러스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는 방역복 입은 경찰, 방역당국 공무원들이 바글바글하고, 그렇게 분위기 삭막하게 입구를 지나 안에 들어오면 커다랗게 4개국어로 보이던 환영한다는 대형간판...아니, 환영을 하는건지 마는건지 어느쪽인건지...개그 하는 것 같았다.

30분 정도 기다리다보니 장가항 가는 사람들이 다 모여져서 버스 탑승을 진행 하였고 장가항으로 이동했다.

장가한 시내에 들어오니 세상 평화로워 보였고 정돈된 도로와 띄엄 띄엄 마스크를 끼지 않는 사람들. 학교에서 수업하는 학생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들... 이곳은 나름 일상을 많이 되찾은 느낌이었다. 한시간 반 정도 걸렸던가. 상해에서 출발을 했던게 8시 반 정도고 장가항 격리시설에 도착한게 11시 반 정도였던것 같다. 

장가항 격리 시설에서도 역시 도착하면 위챗 그룹방에 들어오라고 QR코드부터 보여준다. 그 후 수속절차는 상해 격리 시설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배정되는 방이다. '창문만 있어라...창문만 있어라...창문만 있어라...' 여러번 속으로 생각했다.

창문있다! 깨끗하다!
수건은 두장밖에 없다...그래도 물은 한박스 준다!

아...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창문이 있었다. 심지어 열리는 창문이다.(당연히 열려야 창문인데....) 상해에서는 물을 500ml 6병 밖에 안줘서 물부족으로도 불안해 했는데, 여긴 한박스 물을 줘서 물에 대한 걱정은 없다. 일단, 방이 깨끗하다. 공기 청정기처럼 창문쪽에 달린게 나름 난방기인데 저 난방기를 작동을 시키면 소음이 심각하다는것 빼곤 훌륭하다. 날씨가 봄이라 아침 밤으로 추워질때 잠시만 틀어놓으면 될것 같다.

격리시설 운영 안내문

격리시설 운영 안내문을 한글로 준다. 그래. 이래야지! 상해에 비하면 장가항은 그냥 선진국 수준인것 같다. 상해 뭐냐...저 안내문에 적혀있듯이 그래, 하루에 최소 2회는 창문을 열어 통풍 시켜줘야지! 저래야 정상이지...코로나에 밀폐실 격리는 뭐냐는...앞에 누가 왔다간지도 모르는데...

중국 주재원 지원사격

이미 충분한데 중국 주재원이 마치 웰컴 드링크 주듯이 웰컴 사식을 넣어주었다. 격리 시설에는 얼씬도 못하기 때문에 어찌 인맥을 활용하여 나한테 사식을 전달해주는데...너무 많아서 저건 그냥 격리 끝나면 내가 머물게 된 숙소로 그대로 들고 가야 할거 같다. 과일 먹어라고 귤도 챙겨 줬는데...

중국 귤. 깐귤과 스벅 VIA와 안깐 귤.

나는 중국산 농산물은 무조건 다 큰줄 알았다. 근데 받은 귤들이 작아도 너무 작다. 얼마나 작냐면 스벅 VIA 스틱에 그려진 스벅 로고보다 약간 더 큰 느낌일 정도로 작다. 살살 안까면 찌그러져 버릴까봐 살살 깐다. 너무 작고 귀여워서 상당히 쉴거라고 생각하면서 눈감고 한입에 먹어 보는데, 이게 어찌나 달던지...!

비오기 전 풍경과(왼쪽) 비오고 난 뒤의 풍경(오른쪽)

도착 할때는 봄 기운 솔솔 나면서 곳곳에 살짝 핀 벚나무를 볼 수 있었는데, 방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되면 미세먼지 다 가라앉은 예쁜 풍경을 보라고 장가항 하늘이 나를 위해 신경 써주는가 보다. 

길들이 FLAT한게...자전거 타기도, 달리기하기도 딱 좋을 것 같았다.

시설 격리기간이 11일이 되어 3월 26일이 이곳에서 나올 수 있는 날로 예정 되어 있는데, 그 뒤로 자가 격리로 가야 하는지, 바로 격리 해제가 되어야 하는지, 당국 방침이 매번 쉽게 바뀌어서 그때 되봐야 안다고 한다...

암튼, 이 곳에서 시작하는 11일. 규칙적으로 게을러 지지 않게 잘 시간을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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